정복왕 윌리엄에 대해(2) 필사



 

  역사에서 정복왕 윌리엄이 이름을 남기게 한 가장 큰 계기가 잉글랜드 정복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만년에 들어서 가장 후회한 일이 그 역사에 남는 정복이었다. 매우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지만, 제가 기억하는 그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을 때에는 절로 동감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새하얗면서 임산부처럼 살이 너무나 찐 모습에 그가 갑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악전고투를 겪은 역전의 용사이자 명장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머리에 왕관을 쓴 채로 고민하는 모습이 임금이란 무거운 짐에 괴로워하는 노쇠한 인간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정복왕 윌리엄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자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글 후반부에 언급합니다. 우선 그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온갖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뒀는지. 여기부터 얘기합니다.

 

 

  계산된 위험.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쓴 전쟁의 역사에서 이 낱말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계산된 위험'을 선택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것은 1939~1945년 전쟁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미국 장군들이 늘 써먹었던 바로 그 말이다!> 책에 나온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하면서, 잉글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바다를 건넌 것조차 도박이라고 바라봅니다. 제가 언급하는 그 책에서 윌리엄이 노르망디 대공으로 있을 시  잉글랜드의 해롤드가 가까이 지내면서 그가 충동적인 성품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을 계산하면서 전쟁을 했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자세한 사정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쓸 수 전력은 윌리엄이 해롤드에 비해 적었지만, 그의 강인한 의지와 더불어 뜻하지 않게 온 행운으로 승리했다고 판단합니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전쟁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널리 알려있는 전투인 만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공격측과 방어측이 짠 포진이 백년 전쟁에 있었던 크레시 전투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는 방어측은 궁병이 전혀없다는 점과 공격측이 궁수를 제대로 활용한 덕분에 불리한 전황을 단번에 전황했다. 이런 점이 크레시 전투에서 공격측에 있던 프랑스군이 제노바 석궁병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영국 장궁병과 대열을 갖춘 보병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경우와 놀라울 정도로 비교가 됩니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궁병이 참여하지 못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노르망디군이 쳐들어 가기전에 영국 북부에 노르웨이군이 쳐들어왔습니다. 해롤드는 노르망디의 윌리엄과 싸울 준비를 하다가 노르웨이군이 먼저 쳐들어 오자 그 먼저 쳐들어온 적부터 상대했습니다. 전쟁의 역사에서도 이 전황이 기재되었으며 스템포드 다리 전투에서 궁병의 활약이 주축이 되어 노르웨이군을 전멸하고 노르웨이 왕 하랄 하르로데을 전사하게 합니다. 이 전투는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한 바바리언 시리즈 바이킹족 후반부에도 언급되었기도 합니다. 크레시 전투처럼 궁병이 있었으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롤드가 역사와 달리 승전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전투에만 국한하지 않고 외교처럼 정세를 활용한 쪽으로 살펴보면,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압승을 거뒀다고 말합니다. 바이외 테피스트리에서 나타난 이야기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해롤드가 노르망디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저버리고 잉글랜드의 왕이 되니까 부당하다며 이런 사례를 널리 알립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여론 조작을 했다. 이렇게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노르망디 뿐만 아니라 남이탈리아 있는 노르만 세력, 프랑스, 플랑드르, 브르타뉴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교황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점까지 고려하면 그냥 갑옷을 입은 짐승으로 머물지 않고 아주 뛰어난 머리를 겸비했다. 이렇게 살펴보니 그가 아주 불리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승리를 했는지 알만하겠습니다.

 

 

  해롤드를 패사하고 나서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크처럼 잉글랜드 북부에서는 노르망디군에게 완강히 저항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초토화를 했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렇게 입은 피해가 100년 뒤에야 겨우 복구가 되었다고 할 만큼이었습니다. 이런 항쟁을 진압하고 나서 성탄절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루고 나서야 잉글랜드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원에서 묻혀지는데 그런 과정이 난처스럽기 합니다.

 

  정복왕 윌리엄은 복막염으로 죽었습니다. 말을 타다가 안장이 임산부처럼 부른 배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은 몸이 워낙 비대하고 썩어가면서 더욱 커져가니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기는 과정도 상당히 애먹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여기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서지만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주검을 석관에 안치하려는 순간에 부풀어 오른 배가 펑 터지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이 주검에서 난 악취와 더불어 파편을 맞았다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의 막바지가 될 부렵에 보았던 이 일화를 떠올리니 세상사는 덧없다는 인생무상을 깊게 들도록 합니다. 정복왕 윌리엄의 삶과 죽음을 다시 살피면서 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다시 고민합니다.


덧글

  • arbiter1 2011/05/09 00:01 # 답글

    시체가 터지다니... 복막염이 엄청나게 진행되고있었나보군요...

  • 솔롱고스 2011/05/09 15:06 #

    그렇습니다. 한편, 서둘러 장례를 치루려 했는데 하필이면 이 때에 시체가 터졌으니 그 장례를 치룬 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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