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일본도에 대한 여러 잡담 필사



 

  이번 천일자담은 제목에 나타난 대로 일본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일본도. 섣불리 얘기할 거리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일본도가 최고라는 얘기를 하면 저열한 일빠로 오해를 받겠습니다. 반대로 이 칼에 대해 폄하하면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취급받을 텝니다. 여느 경우처럼 군형을 맞추기 힘들겠지만, 진솔하게 얘기하렵니다.

 

 

  일본도에 제대로 알지 못했을 시절에는 이 칼이 도검류에서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 인식이 박힌 계기가 동호회 채팅창에서 어느 분과 얘기하면서 입니다. 그 분은 취미가 검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도에 대해 매우 좋게 바라보았으며 여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접쇠공법으로 아주 예리한 면모과 높은 내구도를 겸한 무기이다. 그 때 채팅을 하면서 든 인식은 한마디로 나타내 봅니다.

 

  앞 문장에서 언급한 인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습니다. 일본도가 매우 우수한 무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무예도보통지(無藝圖譜通志)에서 왜검(倭劍) 항목이 기재될 정도입니다. 무예도보통지가 조선이 접할 수 있는 냉병기와 이를 다루는 수련법을 모조리 집대성했다고 보면, 일본도와 이를 다루는 검법은 조선에서도 아주 높게 평가했던 점은 분명합니다. 임진왜란 시절에 왜군이 휘두르는 일본도에 참혹하게 당했으며 이를 고려하면 당연할 수 밖에 없지만요. 그러나, 이 칼은 조선에서는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써보니 우리와 맞지 않군. 이 농담부터 해봅니다. 전쟁사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라면 기본 상식이지만, 조선군의 주 무장은 활입니다. 활을 통한 원거리 공격을 선호했으며 도검은 호신용으로 쓰는 부무장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만큼, 칼의 길이가 길면 활을 쏘기에는 지장이 많아 짧은 경우를 선호했습니다. 일본도 활의 중요성이 높았습니다.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는 궁기병에서 시작한 점이 그 한 사례이며 이들이 확고히 부각되기 시작한 가마쿠마 막부 시절에 쓰였던 일본 갑옷은 원거리 무기에 대한 방어도를 우선시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무사끼리 말을 타고 거리를 두고 화살을 날리는 경향에서 대규모로 징집한 보병이 백병전을 벌이는 방향으로 바뀌니까 장창과 더불어 일본도가 부각되었습니다.

 

 활의 중요도가 떨어진 시기에도 야전이나 공성/농성전이나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인 '대망'을 본 기억을 되집으면 - 제가 본 경우는 소설명이 '도쿠가와 이예아스'로 나온 최근판입니다. - 어느 성을 공략하다가 죽은 이의 비율이 이러했습니다. 화살에 맞아 죽은 이가 일곱, 창에 찔려 죽은 이가 둘, 칼에 베어 죽은 이가 하나. 정확하지 않으나 일본에서도 활이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전술부터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 특화되지 않다는 점부터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 쓰인 환도처럼 일본에 쓰인 일본도도 부무장으로 쓰였지만 환도와 달리 백병전에도 적극 쓸 수 있을 만큼 길이가 긴편이었습니다. 또한, 한손으로 충분히 쓸 수 있는 무기어도 위력을 강하게 내기 위해 양손으로 쥐는 방식이 이루는 검술에도 주목합니다. 여기와 더불어 이 무기를 쓰는 이들이 전장에서 모 아니면 도로 밀어붙이는 점도 한 몫을 단단히 합니다.

 

 

  쓰다보니 본래 목적과 다소 어긋나게 쓰였던 듯 합니다. 칼에 대해서만 얘기하게 될 얘기를 활과 전술같은 다른 분야를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군더더기가 생기겠다고 여기지만, 일단 이 방향으로 이어갑니다. 임진왜란에서 앞 문장에 언급한  경향이 제대로 나타낸 전투가 용인 전투로 바라봅니다. 5만명이 되는 조선군이 1,600명 밖에 되지 않는 왜군에게 대패했다. 5만이 비전투원까지 포함한 경우로 가정하더라도 이 대패를 믿기지 못합니다. 왜 이런 패배를 생겼는지 살펴보니 왜군이 죽자살자로 육박전을 벌이니 이 기세에 조선군이 꺽였다고 봅니다. 위키백과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상황이 다르지만요. 조선군이 적을 기습했는데 기습한 부대가 궤멸되고 이들을 이끌었던 백광언과 이지시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맹장으로 유명한 장수가 죽으니 조선군은 사기가 떨어졌으며 왜군은 이를 노려 급습한 듯 합니다. 하필이면, 밥을 짓고 먹으려는 순간이나 조선군은 단단히 허를 찔린 상태였습니다. 이 경우는 전술 운용이 매우 중요했다고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무기 체계가 이를 뒷받침을 했다고 봅니다.

 

 

  한편, 무기를 쓰는 이들과 그들이 처한 전술 같은 상황을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만드는 이에 대한 얘기를 하렵니다. 글을 너무 길게 쓴 것 같아 간단히 적으렵니다. 쓰레기 통에서 멋진 장미를 본 기분이다. 이 한문장으로 일단 말뚝을 박고 봅니다. 일본에 있는 철은 사철(沙鐵)이라 불순물이 많은 질낮은 철입니다. 그들이 쓰는 한자로는 옥강(玉鋼 : 타마 하가네)으로 표기하지만, 이는 제대로 된 철광석이 없는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듯 합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사라진 접쇠공법을 계속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나보니 이들이 만들어낸 칼이 뛰어난 무기로 인정받은 일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 상황을 아니까 그 칼을 만드는 이들에게 남모를 경의를 느낍니다. 제가 일본도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요인이 바로 이들입니다. 무기 자체, 그 무기를 쓰는 무사가 아닌 그 무기를 만들어낸 장인입니다. 열악한 기반에도 남모를 정성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은 본받아도 마땅합니다.

 

 

  이렇게 일본도에 대한 여러 잡담을 했습니다. 한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여러 얘기를 했습니다. 아직 글을 제대로 쓰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셈입니다. 갑옷으로 비유하면 제대로 된 판갑을 만들지 못해서 찰갑을 짜놓았습니다. 철편 하나하나를 제대로 엮지 못해 보기 흉한 찰갑이 되었다. 글을 쓸 때마다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뛰어난 판갑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해도 찰갑을 계속 역어가면 판갑을 만들 수 있겠다는 이런 희망을 품으면서 글쓰기를 이어갑니다.


덧글

  • arbiter1 2011/05/12 15:25 # 답글

    그런데 제가 알기로 일본도도 장인이 제작한 매우 높은 등급이 아니면 내구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맞을런지요. 그래서 공법도 까다롭고 해서 그네들이 명도(刀)를 받들어 모시는것도 이유가 그렇다고 봅니다. 전술과는 별개의 문제지만요.
  • 솔롱고스 2011/05/15 06:32 #

    아마 아비터님이 말씀하실 대로일 텝니다. 그런 질낮은 철로 좋은 칼을 만드려면 처절하게 노력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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