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메르키트 : 황금 씨족에서 해서는 안 될 모욕 필사

 

  메르키트. 이 부족명을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칭기즈칸과 관련있는 매체를 접하신 분이라면 익히 아실텝니다. 그런만큼 테무친과는 지독한 악연으로 맺어있으며 누가 자신을 메르키트라 하면 혈육이라도 죽일 만큼 맹렬한 적개심을 품는 점도 잘 아실텝니다. 이번에 할 천일자담은 칭기즈칸을 비롯해 황금 씨족 내에서 이런 모욕을 한 사례와 여기에서 비롯된 결과를 얘기합니다.

 

 

  벡테르 -> 테무친. 차가타이 - >주치. 구유크 -> 바투모욕한 쪽 -> 모욕당한 이로 관계도를 나타내면서 순서대로 얘기합니다. 벡테르 -> 테무친은  전에 썼던  천일자담 중에 제목이 형제 살해로 작성한 경우에 언급했듯이 벡테르는 사사건건 테무친의 권위를 도전합니다. 그가 테무친에게 메르키트의 혈족으로 매도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에는 테무친은 벡테르를 죽이고 마는데 이는 자신의 권위를 도전하는 누구라도 용서치 않는다는 원칙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이 패륜 행각을 빌미로 타이츄트부타르구타이 키릴투크가 테무친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요. 이런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절대 군주로 성장한 칭기즈칸은 벡테르처럼 자신의 권위를 건든 자를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체 베키, 쾨쾨추, 타양칸, 호라즘 술탄 무하마드. 이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칭기즈칸을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텝니다.

 

  차가타이 -> 주치. 이 경우는 몽골 제국이 분열되는 과정으로 가는 첫 단추에서 심각하게 볼 수 있으면서 의외로 파장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차가타이가 벌인 이 비난으로 그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차가타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에는 이런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알고보니, 이는 그의 성품이 너무 곧아서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정한 성품인 만큼, 혈통이 분명하지 못한 주치가 카한이 되는 것 만큼은 용납할 수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치에게는 씻을 수 없는 모욕이라 차가타이와는 두고두고 다투게 되는 것은 물론이며 몽골 제국이 주치가/툴루이가차가타이가/오고타이가로 양립하는 시초가 됩니다.

 

 

 구유크-> 바투는 선대에 있던 대립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벌어놓였다고 봅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못하며, 손자는 그 아들보다 못하다. 절로 런 얘기를 떠올릴 정도입니다. 차가타이가 황금씨족 내에 심각한 불화를 일으켰지만, 정상참작할 여지가 있습니다. 앞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자기 자신에게도 매우 엄청했으니 카한으로 있는 오고타이가 과음같은 경우로 국정을 망치는 소식이 오면 찾아와 이를 엄정히 꾸짖어서 잠시나마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유크에게는 차가타이처럼 정상참작할 여지가 보이지 않아 보이며 그러기 때문에 몽골 제국을 분열시킨 대원흉 중 하나로 바라봅니다.

 

  바투를 비롯한 황금씨족 출신 제왕의 무능을 질책한 점은 괜찮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에게 메르키드의 혈족으로 모욕한 점은 크나큰 실책으로 간주합니다. 이렇게 척을 진 바투오고타이가 대신 툴루이가를 밀어줬기 때문입니다. 오고타이 카한이 붕어한 뒤에 쿠릴타이에 자신의 형인 오르다를 대신 보내면서 일단 구유크가 카한에 오르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했으나 이를 몇 년 동안 지연할 만큼 앙금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카라코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며 이 때문에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구유크와 전면전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다고 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밀(에밀)의 날씨가 나의 몸에 잘 맞고 또 그곳의 물이 나의 병에 좋다." 라시드 앗 딘의 집사 제 3권 : 칸의 후예들 구육 칸 기에서 이 구절을 살펴보니 같잖은 속임수로 치부합니다. 그 땅이 몽골 고원에 비해 해발 고도가 낮고 사막지대라 유목민이 살기에는 힘든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헛소리를 하면서 오고타이가의 영지에서 군대와 물자를 자출하려는 수작이었습니다. 이렇게 모은 재원으로 아바스조 칼리프조를 비롯해 몽골이 장악하지 않는 이슬람 지역을 쳐들어가면 모르겠지만, 바투가 있는 킵차크 칸국으로 쳐들어갈 게 더욱 유력했기 때문에 때문에 저로서는 북괴처럼 먼저 도발하냐면서 반감을 품습니다. 이런 시도를 하다 죽었기 때문에 툴루이가몽케가 카한으로 오르는 매우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제 주관이 너무 치우치게 썼습니다. 특히, 구유크에서는 누가보더라도 매몰차게 썼기 때문입니다. 그렇긴 해도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했으며 거기에 대한 댓가는 혹독히 받게 마련이다. 모욕은 손실보다 오래간다. 어린 시절에 타자 연습을 하면서 보았던 이 문구를 떠올리면서 이번 천일자담을 마칩니다.



 

   추가 기재) 오늘 도서관에서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2 : 참혹한 산하를 살피보니 제가 구유크가 바투의 혈통을 모욕한 기술이 잘못되었습니다. 비록 그 책은 몽골사를 직접 다루지 않지만, 제가 살필 내용은 충분히 기술했습니다. 제 4장 몽골의 황권투쟁에서  러시아 전선에서 벌어진 몽골의 권력 투쟁 항목을 살피니 구유크와 바투의 불화는 극심했습니다. 그렇게 된 계기가 바투가 주최한 연회에서 바투가 먼저 술을 마시자 구유크와 부리가 이를 못마땅하며 바투를 모욕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바투와 구유크가 싸우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구유크에 대한 악감이 강해서인지 그 자가 자신이 카한의 장자인데 메르키트의 핏줄인 바투에게 고분고분해야하냐는 오만한 감정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더 얘기하고 싶지만, 자칫 구유크에 대한 악의깊은 기술이 또 나올 것 같아 여기까지 추가 기술합니다. - 2011년 8월 18일 오후 10시 16분


덧글

  • 데프콘1 2011/08/18 23:48 # 답글

    근데 주치한테 메르키트놈!!!
  • 솔롱고스 2011/08/18 23:58 #

    이런 모욕이 예케 몽골 울루스가 갈라지는 화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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