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후한의 명장 마원(馬援)에 대해 간단히 적습니다. 필사

 

  이번에도 어제는(2011년 9월 9일)처럼 곰TV로 GSL을 보면서 블로깅을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간단히 적고 봅니다.

  마원(馬援). 실적에 비해 명성이 덜한 사례로 바라봅니다. 그가 섬긴 주군인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도 그러합니다.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이를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 누가 광무제 유수를 이렇게 평할 정도였습니다. 신하주군이나 이런 점이 같아 보입니다.

 

  그렇긴 해도 마원은 현장에서 많이 뛰었기 때문에 유수에 비해 많이 알려진 편으로 바라봅니다. 노익장(老益과), 마혁과시(馬革裹尸). 이 두 고사성어가 이 어르신에게서 나왔습니다. 노익장은 나이가 들었어도 갑주를 입으면서 말을 타면서 자신이 장정처럼 싸울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일화에서 나왔습니다. 예순두 세나 드신 할아버지가 이렇게 팔팔했으니까 광무제는 이 분을 장군으로 삼아 동정호 일대에서 봉기를 한 만족(蠻族)을 진압하는데 투입니다. 이렇게 노익장을 과시하고 나서 몇년 되지 않아 진중에서 병사한 점이 안타깝긴 합니다.

 

  마혁과시. 그가 이 말에 경의까지 표합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자신이 세운 공적에 만족했을 텝니다. 그러나 마원은 이 말을 하면서 오환(烏桓)과 흉노(匈奴)가 있는 북방 전장으로 향합니다. 그가 지금의 베트남 북부인 교지(交趾)에 일어났던 봉기를 진압한 큰 공을 세웠어도 사소하다고 일축하며 다른 전장에 가려는 모습에 사나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며 마음먹습니다.



  이 분이 자기 자신을 수련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주군을 제대로 만난 덕분에 큰 공을 계속 세웠다고 봅니다. 사막에서 밀림까지. 산전수전을 다겪으면서 후한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든든한 초석을 세운 분으로 바라봅니다. 중화질서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그런만큼 증씨 자매가 일으킨 봉기를 철지히 짓밝은 모습에 꺼림직한 기분이 크긴하지만요. 점령지로 얻는 농토를 진압에 투입된 병사에게 나누어 이 땅을 중화로 편입시키렸던 시도에 무시무시하게 보입니다.


이런 반감과 공포가 있으나 그 분이 자신의 사명에 헌신한 모습에 남다르게 감탄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본받으면서 이번 천일자담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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