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소태후를 기리면서 필사


  어제 해야했던 천일자담을 이제서야 합니다.

  소태후(蕭太后). 거란의 황후는 소씨(蕭氏)에서 배출했던 만큼, 소태후가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소태후는 남편이 거란 경종 야율현(景宗 耶律賢)이며, 아들이 거란 성종 야율융서(聖宗 耶律隆緖)인 예지황후(睿智皇后)를 가리킵니다. 이름은 소작(蕭綽)이며 아아극(雅雅克) 혹은 연연(燕燕)으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소작은 한식(漢式)이름 같으며 아아극과 연연은 거란 이름을 음차했거나 아명으로 짐작해 봅니다.


  활이 바꾼 세계사를 접하면서 이 여인을 알았습니다. 기억이 많이 흐려졌으나 키가 작은 점을 빼고는 완벽한 여인으로 기술합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측천무후처럼 공포정치로 권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도리어 매력이 깃든 부탁으로 완고한 장군마저 설득했으니까요. 여기에 뛰어난 인재라면 거란인이든 한족이든 가리지 않고 중용한 공정한 면모도 이 분을 더욱 기리게 합니다. 이러했던 덕분에 외침을 가뿐히 막아냈다고 여깁니다.


  거란 경종이 붕어하고 성종이 10대 초반으로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자 호시탐탐 연운 16주의 수복을 노리는 송 태종 조광의가 100만 대군을 일으킵니다. 이에 거란은 40만 군대를 동원했다고 합니다. 거란과 송이 동원한 병력이 전투병만 가리키는 건지 타초곡과 치중병을 비롯한 보급병까지 포함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요. 이런 대규모 부대를 동원했어도 송이 연운 16주를 수복하지 못한 점에서 거란의 강성한 군사력에 놀랍니다. 그러면서 구심축으로 단단히 활약한 소태후도 놀라게 바라봅니다.


  외침을 막고 내치을 충실히 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이런 업적을 쌓은 것 만으로도 경탄하지만 화룡정점인 전연의 맹에 더욱 놀랍니다. 마음만 먹으면 송을 멸망시킬 수 있으나 적절한 판단으로 이들로부터 막대한 물자를 뜯어낸 점에 전쟁을 제대로 활용한 뛰어난 정치가로 받아들입니다. 전연성 전투에서 친적이자 선봉장인 소달란이 송군이 쏜 노포(努砲)에 전사했다는 손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요. 이런 업적을 세우고 나서 5년 뒤에 눈을 감았으며 거란의 2차 고려 침공이 일어난 원인을 간접으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뛰어넘는 업적을 세우기 위해 상중이어도 원정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강조를 격파하고 개경을 불태워서 눈앞에 고지가 보였으나 고려가 펼친 완강한 저항에 결국 물러나고 말았지만요. - 제가 보기에는 야율융서가 3년상을 제대로 치루면서 고려의 내분이 수습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침공해도 늦지 않다고 짐작합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건가. 블로깅을 하면서 몸이 무기력과 통증을 느끼니까 여기에서 그만둡니다. 한덕양(韓德讓)과 스캔들이 있지만, 소태후는 거란 여인이지 한족 여자나 이조 사대부 아녀자가 아니니까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몸관리 제대로 못해 일찍 죽은 거란 경종 탓이 크다고 짐작해보고요. 졸렬하게나마 소태후를 기리는 글을 쓰면서 밀린 천일자담을 늦게나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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