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여요전쟁과 대몽항쟁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간단히 적습니다. 필사

 

 

   오늘 오후 6시 이후에 있는 GSL을 원활히 보기 위해 미리 천일자담을 적습니다. 점심 먹고나서 꾸물거리지 않고 그 때에 했을 걸. 이런 후회가 스쳐갑니다.

 

  여요전쟁대몽항쟁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거란몽골유목민족이 세웠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전쟁을 일으켰던 시점에는 중원을 도모하기 전에 고려가 중원에 있는 나라와 손을 잡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 있던 점입니다. 1차 여요전쟁에는 이런 전략이 아주 눈에 띄었으며 그러기 때문에 고려가 강동 육주에 있는 여진을 때려잡는데를 묵인했습니다. 여기에 비해 몽골이 고려를 집요하게 침공한 점은 이런 전략이 눈에 띄지 않으나 암암리에 고려가 남송에 지원하지 않도록 이끌었다고 판단합니다.

 

  앞문단에서 차이가 있으나 더욱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의 대응입니다. 여요전쟁에서는 고려가 적극 대응했습니다. 1차에서는 서희거란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해 거란한테 땅을 내주는 일을 막았습니다. 2차에서는 강조가 이끈 군대가 참패를 해서 개경까지 거란군한테 함락당했으나 집요한 항쟁으로 거란군을 몰아냈습니다. 3차에서는 귀주에서 벌인 결전에 승리를 했습니다. 이후에도 거란군이 쳐들어왔으나 예전처럼 임금이 친정하게나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지 못했습니다.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치루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어도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 입지를 달성했습니다. 나라를 세운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막장에 놓여있지 않아 국력이 착실한 상태였으며 기세전략에도 이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덕분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몽골과 싸울 때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몽골이 쳐들어 오기 전에는 무신정권전횡과 곳곳에서 일어나는 봉기로 나라 사정이 엉망이었습니다. 몽골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는 빌미가 된 강동성 전투에서는 고려군이 몽골에게 쫗긴 거란인 피난민을 제대로 막지 못해 이들이 박달재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거란인이 전투민족으로 바라보아도 피난민한테 군대가 패주하고 외국군을 끌여든인 점을 곱게 볼 수 없습니다.

 

  고려는 몽골의 과도한 요구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몽골 사신이 피살되니까 몽골과 척을 졌습니다. 이 때에는 몽골이 크게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많아도 1,2만 정도로 짐작하며 주력이 몽골인이 아닌 이들에게 복속된 거란인이나 여진인으로 추측합니다. 호라즘과 금에서 싸운 정예 부대를 보내지 않았던 점이 거란이 고려와 전쟁을 벌였던 경우와 너무나 다릅니다. 여기에다 최씨 정권강화도에 농성하고 현상 유지를 했다는 점이 매우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기분이 드니까 이번 천일자담을 여기에 마치려고 합니다.

 

 

  이번 얘기를 쓰면서 외적과 제대로 싸우려면 무엇이 튼튼해야 하는지 살핍니다. 바로 국력이 튼실해야 합니다. 이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려면 백성이 잘먹고 잘살아야 하지 헐벗고 굶주려서는 안된다고 확신합니다. 후삼국시대에 일어났던 전란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었던 시기와 권력자의 횡포과 잇다른 봉기로 얼룩진 시기. 이 두 시대를 간단히 비교해도 어느 쪽이 국력이 튼실하고 백성이 살기 좋았는지 금방 알아차릴 텝니다. 이런 차이가 외적과 대항하는 경우에서도 드러냈다고 바라봅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