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이쾌대 화백이 월북한 사정을 아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필사


  낮에 썼던 얘기를 이어 적습니다.

  오전에 받았던 시민인문강좌에서 강사를 맡으신 교수님이 이쾌대 화백을 이렇게까지 극찬하셨습니다.

  우리나라 현대 미술에서 특히 '인물화'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아 쑥스럽지만요. 그를 능가한 사람은 전에도 후에도 없다는 얘기를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교수님이 하신 이 평가에는 동의합니다. 상황, 이어 군상을 나타낸 슬라이드를 보여주시면서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 그림에 나타난 여러 사람을 배치하는 구도를 잘 맞추기가 힘들다고 설명하면서 이쾌대는 그 구도를 잘맞춘다고 평하셨습니다. 믿을 수 있는 전문가가 하는 얘기이니 일단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요.


  교수님께서 극찬하실 정도로 그림을 훌륭히 그리신 분이 '월북'이다는 막장스런 선택을 했는가. 이 안타까운 사연이 얽힌 내막을 이번 천일자담에서 얘기합니다. 이 사연을 접하니까 제가 악으로 간주하는 <분단 체계>를 무너트려야 하는 각오를 더욱 다집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서울에 있다가 인민군한테 잡혔습니다. 그 바람에 인민군이 강요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인민군이 정당화하는 그런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 때는 TV나 인터넷이 널리 퍼지지 못했으니 선전용 그림이 가장 효과가 높은 수단이었으니까요. 이 세태에서 나온 은어가 <삐라>다고 짐작하면서 말입니다. 강의에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한국 전쟁에 일어나기 전에 보도연맹에 가담했으나 전향했다는 얘기를 적습니다. 이 얘기를 쓰니까 상황이 더욱 나쁘게 흘려갔으면,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를 칩니다.



  인민군의 강요 때문에 그림을 강제로 그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도 이쾌대 화백을 둘러싼 상황이 뒤틀린 방향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포로수용소에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는데 여기에서 기구하기 그지없는 사연을 알았습니다. 서울에 있던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 갔다는 내막을 모르셨습니다. 휴전이 되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속담을 떠올렸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입니다.


  교수님께서 이쾌대 화백이 쓰신 편지를 알리시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부산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 때에는 쓰셨던 편지에 나타난 글를 읽어주셨습니다.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 갔는데도 서울에 있을 줄 알고 편지를 서울에 있는 집주소로 보낸 상황에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편지에 나타난 내용이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구구절절했습니다. 붓이나 팔레트 같은 미술 용품을 팔아 아이들이 쓸 양육비를 보태주라는 내용에서 가족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를 느꼈습니다. 그 용품은 화가에게 목숨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좌 초반부 쯤에서 아내가 되는 여인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접한 기억까지 되집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가족과 헤어진 것만으로 슬픕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 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니까 그 슬픈 감정이 아주 커집니다. 이쾌대 화백이 남긴 그림 중에서는 모델이 부인이신 유갑봉이 모델이 된 경우가 상당합니다. 습작이든 출품작이든 말입니다. 누드 모멜이 아내일 소묘 작품을 나타낸 슬라이드를 보았을 때에는 그림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는 점이 생각났지만, 이 얘기를 쓰는 지금에서는 천생연분을 제대로 맞이한 덕분에 훌륭한 거장이 되었다는 생각을 적습니다.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으니까 월북을 택하고 말았다. 이렇게 쓰는 것만으로도 비극이기 그지없습니다. 남한에 남겨진 가족은 연좌제 때문에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할 고통을 겪습니다. 이런 열약한 상황에서도 올곧게 살아가신 오갑봉 여사를 향한 감탄과 존경심이 생기지만, 생전에는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는 저로서는 가늠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갑봉 여사를 어머니로 두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천일자담의 초반부에서 언급한 대로 제가 악으로 간주하는 분단 체계가 야기한 끔찍한 사례 중 하나로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비극은 여기에 끝나지 않습니다.


  월북한 이쾌대 화백은 그 땅에서 가족을 새로 둡니다. 생이별을 한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거기에서 아내를 맞이하면서 아이를 낳았으며 1차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아버지가 같이 둔 그 이산 가족이 부친의 생사를 알립니다. 월북하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사람이 죽는 일은 숙명으로 받아들여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가장 나은 선택으로 월북했는데 거기에서는 아무런 공헌도 없이 죽은 일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교수님이 북한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셨다고 얘기하셨고요. 이쾌대 화백이 월북하기 전에 남기신 명화를 본 기억을 다시 되집으니 피가 꺼꾸로 흐르는 기분마저 듭니다. 하늘이 준 인재를 헛되이 뭍혀버렸구나. 북한이. 이 분노를 적습니다. 그 분노를 머금게 한 그릇된 체계를 어떻게 무너트려야 하는 가를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수정 사항 : 오갑봉이 아닌 유갑봉입니다. 이 오류를 수정합니다.


덧글

  • ... 2013/12/04 21:09 # 삭제 답글

    안타깝네요
  • 솔롱고스 2013/12/04 21:18 #

    안타까운 마음이 아주 큽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를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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