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88 서울 올림픽을 얘기하며 필사



  어제 오전에는 임실공공도서관에서 시민인문강좌를 받았습니다. 강좌 제목이 '스포츠로 보는 한국사'이며 제 24회 서울 올림픽을 주제로 했습니다. 흔히 '88 서울 올림픽'으로 얘기하니까 제목을 이렇게 달고요. 잊기 전에 기록하자. 이런 마음으로 이번 강좌에 참여하며 알고 느낀 여러 생각을 얘기합니다.



  전력이 일본이 앞섰다. 그러나, 이를 믿고 방심하다 이길 싸움을 지고 말았다. 이 얘기부터 합니다. <일본인의 결점은 우리나라와 밝땅 겨레를 우습게 본다>고 꼬집어 냅니다. 거기에서 하는 말로 잇쇼켄메이(一所懸命, いっしょけんめい).  이 말에 딱 어울리게 성심성의로 전력을 다했으면, 우리나라가 '신화'를 이룰 기회조차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적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뼈아픈 패배를 날릴 기회를 준 셈입니다. 일본국(日本國)이 말입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다시는 할 수 없을 곡예를 펼쳤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적고자 합니다. 성품이 성급해도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은 커녕 아시안 게임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강좌에서 재정문제로 아시안 게임을 포기했다는 내막을 아니까 씁쓸했습니다. 강좌에서 보고 들은 동영상을 통해 아시안 게임 개최 포기로 벌금으로 20만 불을 냈다는 지난 얘기담에 굴욕을 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벌금 액수가 둘째치더라도 우리나라 아시안 게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열약했으니까요. 박정희 정권은 아시안 게임을 포기할 정도로 기본 토대가 취약했어도 올림픽을 강행하려 했는지. 이 사정이 궁금합니다. 강좌를 받았던 낮이나 지금 이 얘기를 쓰는 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가 죽은 뒤에도 우리나라를 올림픽을 개체하려 했습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더욱 필사적인 것 같습니다. 원죄에서 비롯된 오명을 씻기 위한 몸부림. 이렇게 판단합니다. 군인이었던 전두환이 군사 반란을 일으키며 양민 학살을 자행했던 죄악을 가리려는 분칠로 올림픽을 이용한 셈입니다. 승산이 없어 당시 서울 시장을 맡았던 박영수가 사퇴 성명을 미리 준비하고 명예로운 퇴각을 바랬던 중론에서도 말입니다. 여기에는 사정이 어두이니 더욱 자세히 알아보립니다. 서독 바덴바덴 총회에 들어서기 전에는 어떠했는가입니다.


  바덴바덴에서는 우리나라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IOC 의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가합니다. 값비싼 선물 대신 꽃을 전달하며 꽃이 시들 때마다 곧바로 다른 꽃으로 바꾸는 수고를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부터 우리가 일본을 이겨냈다며 마음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이어서 열의를 다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IOC 의원에게만 신경쓰지 않았고요. 아디다스의 사장인 다슬러를 우군으로 끌여들였습니다. 주도권을 아디다스한데 뺏길 위험을 감수했지만, 올림픽을 개체하는데 성공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전장이 바덴바덴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선전했습니다. 바로 잠실에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한 일이었습니다. 도박 용어인 올인에 해당할 정도로 위험천만했지만요. 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면 막대한 건설비를 메우지 못해 생겨난 재정 적자로 출발해서 나라 자체가 막장으로 주저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가정에 아찔하나, IOC 의원에게 우리나라가 올림픽 준비한다는 면모를 잘 보여줬습니다. 일본은 설계도같은 서류나 달랑 있었거든요. 이 상황을 되새기니 실소가 절로 나옵니다. 더구나 통역도 성의없다는 상황까지아니 우리나라와 너무나 대비되었습니다. <그냥 이길 거다고 생각했냐>. 일본이 거듭했던 저지른 과오에 할 말이 많으나 <>괄호에 쓴 얘기로 줄입니다. 계속 얘기를 써야하니 힘을 아껴야 하니까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대로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 84차 총회에서 서울이 54 대 27로 나고야를 이기고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문단에서 올림픽 유치에 실무를 총괄했을 정몽준을 인정하는 얘기를 합니다. 현재 서울시장을 노리려는 점에서 만큼은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이와 별개로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애쓰신 경력만큼은 칭찬해야 마땅합니다. 그가 지금에 비해 젊은 시절에 혼신을 다했으며 그 덕분에 '신의 한수'를 내셨으니까요. 그러면서 높은 자리에 오르니까 전성기에 비해 노쇠하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오심같은 상황에 힘써야 할 때에 그러지 못한 점에서는 안타까운 마음도 같이 적습니다. 젋으셨을 때에는 그러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올림픽을 개최했다고 '곡예'가 끝난게 아닙니다. 1970년에 치를 아시안 게임을 개최할 수 없어 벌금을 내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포기했던 사례가 올림픽에 나올 뻔 했습니다. 가장 큰 고비는 1987년에 일어났던 유월 항쟁입니다. 전두환이 1980년 5월처럼 광주를 짓밟듯이 시위대를 진압했다면 올림픽을 치른다해도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을 텝니다. 또한, 북한이 훼방놓은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같은 해에 일어났던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이 얼마나 저열한 무리인지를 잘 드러냅니다. 북한을 향한 적개심과 불신이 지독해서 우리나라와 밝땅 겨레를 경멸하는 일본처럼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할 얘기가 더 있으니 이번 경우도 얘기를 아끼며 지나갑니다. 다음 얘기에 충실하게 하면 되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을 치뤘습니다. 여느 올림픽 대회에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판단합니다. 개회식에서 코리아나가 '손에 손잡고'를 부른 순간을 나타낸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강좌에 이 동영상을 보니 개회식도 공들은 흔적을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제 눈에 가장 띈 점인 호돌이 옆에 지난 대회의 마스코트인 미샤와 샘이 있던 모습입니다. 각기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로스 앤젤레스에서 개체했던 대회를 나타내는 두 마스코트를 호돌이와 같이 보면서 88서울 올림픽은 냉전으로 비롯된 반쪽 대회를 씻어냈다는 의미가 가장 잘나타낸다며 보았습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1979년 일어났던 소련 -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모스크바 / 로스 앤젤레스 올림픽을 반쪽 대회로 만든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전쟁이 서울 올림픽에 뜻하지 않는 어부지리를 안겨주었나. 이런 의문을 드러냅니다. 냉전에 떨었던 온누리에 그 공포를 잠시라도 떨처낼 수 있는 '잔치'로 생각하면서요. 확실하게 말입니다. 서울 올림픽이요.



  쓸 얘기가 더 있으나 이 문단에서 멈추렵니다. 기다리다 치쳤어오. 땡벌. 땡벌. 아니, 쓰다가 지치니까요. 서울 올림픽의 밝은 부분은 다 아실테니 어두운 부분을 얘기하고 이번 얘기를 끝내렵니다. 전시 행정으로 숱한 사람이 집을 잃고 떠나 고생했다는 얘기에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자기 집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올림픽을 치른다는 명목으로 박살나니까 혀에 씁쓸한 맛이 감돕니다. 강좌에서 보았던 동영상 중에는 다큐극장에서 88 서울 올림픽을 다룬 편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땅굴을 파며 10개월 동안이나 살았던 이면에 경악합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서울 올림픽에 나타난 어두운 면을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화합을 이루지 못한 올림픽>이다는 생각을 적은 메모를 블로그에 올립니다. 또한, 서울 올림픽에 성공한 것에 교만해서 OECD에 무리하게 가입한 뒤에 곧바로 IMF 경제 환란을 맞이한 실패했다는 관점을 적습니다. 승리. 교만. 패배. 역사에서 계속 나타나는 이 흐름을 따른 건가며 의혹을 내비칩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열리는 2014 인천 아시아 게임과 4년 뒤에 있는 평창 겨울 올림픽 대회에 일단 조마조마합니다. 이 두 행사가 크게 잘못되면, 최소한 인천과 강원도가 파탄나며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뒤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우리나라가 중흥할 수 있는 기회로 되기를 바라지만요. 서울 올림픽을 주제로 한 강좌를 접하니까 절로 이 두 대회까지 신경이 쓰이니까 이번 얘기에 같이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받았던 강좌를 통해 각인된 생각을 적습니다. <배운다. 계속 배운다. 끝까지 배운다>. 소설가로 먹고 살고 싶다면, 얘기를 재미있게 써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낮에 받았던 강좌는 제가 블로깅을 하는 계기를 다시 확인합니다. 88 서울 올림픽을 얘기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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