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자담] 동북아 국가가 펼치는 역사 늘이기



  복습. 이 낱말을 떠올리며 이번 천일자담을 적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배웠던 사항을 늦게나마 적는다. 이런 목적이 있습니다.

  한국 상고문화를 통한 '한문화'이해. 이 부제로 열리는 인문강좌를 화요일마다 있으니까 전라북도도청에 찾습니다. 오늘도 이 목적으로 전주에 갑니다. 전주에 가기 전에 블로깅을 하자. 이 목적도 있지요. 지난 강좌에서 배웠던 것중에서 제목에 나타난 역사 늘이기를 이번에 알립니다. 될 수 있는대로 짧게 나타냅니다.

 


  일단, 중공(中共)부터 얘기합니다. 흔이 중국(中國)으로 일컫으나 저는 중공으로 고집합니다. 왜냐, 그 나라가 세계 중심 국가일 중국에 걸맞는 자격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느 강대국처럼 패도(覇道)를 추구하는 나라일 뿐. 그 나라에서 벌이는 못된 면모를 못마땅하게 보니까 중국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華國)를 줄인 말로 중공을 나타냅니다. 사견이나 제 블로그에 처음 찾아오실 분이 있으니까 여기에서는 길게 적습니다.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 斷代工程)과 중화문명 탐원공정(中華文明 探原工程). 중공이 펼치는 역사 늘이기입니다. 하상주 단대 공정은 실존 여부가 명확하지 않는 하상주 삼대(三代)를 확실하게 역사로 굳히려는 작업입니다. 중화문명 탐원공정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일컫는 부분을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입니다. '수작'으로 비꼬우나 중공 정부가 심혈을 다하는 점에서는 가공하기 그지없습니다.


  강좌에서 중공 정부가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 斷代工程)에 관련된 모든 학문에 아낌없이 지원하는 부분을 늦게나마 알았습니다. 여기에는 경악합니다. 역사학, 천문학, 고고학, 탄소연대측정이외. 조그만 단서를 찾으면 어떻게든 사실처럼 만들어낸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커먼 속셈이 확실하게 드러나도 수완이 뛰어나니 반박하기 힘듭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중공의 기초 과학 수준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같은 여러 학문도 마찬가지다는 생각을 내비칩니다. 중화문명 탐원공정도 마찬가지로 기본 토대는 하상주 단대공정처럼 목적이 확실하고 지원도 탄탄합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했을 때, 신화와 전설로만 여겼던 삼황 오제 시대를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저의에는 '서화 족속은 아주 집요하니 어떻게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근성을 확인합니다. 서화(西華)는 저쪽에서 중화(中華) 민족으로 자처하니까 중화도 싫으니 서화로 바꾸어 얘기합니다. 중공과 서화를 싫어하는만큼 그 쪽에서 품는 목적과 있는 장점을 제대로 알자며 배우면서 말입니다.

 


  중공을 얘기했으니 일본을 얘기할 차례입니다. 야요이(彌生) 시대의 연도를 기원전 930년경에 시작했다고 제기하면서 앞서 있던 조몬(繩文) 문명이 주체가 되어 계승했다는 주장을 내세웁니다. 중화를 서화로 얘기하듯, 야마토(大和) 민족을 동왜 족속으로 가리킵니다. 그렇게 멸시해도 싸다는 인식이 깊기 때문입니다. 동왜(東倭) 쪽에서 하는 역사 늘이기를 보면, 근현대사를 지들에게만 유리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니 피가 꺼꾸로 흐르는 기분이 듭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이 주체가 된 기존 학설을 자기 사정에 유리하게 조작하려니 동왜를 향한 증오가 더욱 차갑게 불탑니다.


  앗차. 동왜 쪽에서 야요이 시대의 연도를 올리는 근거가 이러합니다. 'AMS 연대측정법'으로 유물을 측정하니까 이렇게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AMS 연대측정법. AMS가 (Accelerator Mass Spectrometey)를 줄인 말입니다. 질량분석가속기 같은 장비를 이용해 기존 탄소연대측정법에 비해 나은 수준으로 유물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극소량으로 훨씬 짧은 시간에 연대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AMS 연대측정법은 믿을만하지만, 이 측정에 나온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왜 쪽이 일본 땅에서 구석기 시대를 나왔다는 주장을 하려 유물 조작을 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부류를 향한 불신과 의심이 극심하니까 일본에서 하는 역사 늘이기도 마찬가지로 불신부터 내비치고 봅니다. 해묵은 적개심까지 겹치니까 중공에 비해 쉽사리 가라앉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중공과 일본이 하는 못된 짓을 따라해 보입니다. 여기에는 찜찜합니다. 하는 정도가 저 두 족속에 비하면 덜하여도 본질이 못된 짓을 따라해 보이니까 찜찜합니다. 청동기문화 형성 시기가 기존에는 기원전 13 ~ 10세기로 있는 관점을 기원전 20 ~15 세기로 올렸습니다. 년대를 올린 근거가 이러합니다. 청동기 시대에 썼던 유물 중 하나인 토기가 있습니다. 석기 시대에 썼던 토기는 아니고요. 그 유물을 출토해서 측정 연대를 재니까 기원전 20 ~ 15세기 경으로 나온다. 이런 논거로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연대를 올렸습니다.


  년도를 올리는 데에만 멈추지 않고 연해주에 나타난 유물과도 연계를 합니다. 나아가서 단군이 나타났다는 시점과도 연결합니다. 제대로 되면 좋을 텝니다. 그러나, 허명을 높히려 실속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공은 역사 시작 년도가 메소포타미아에 뒤떨어진다는 내막에 생긴 열등감.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공에 비해 청동기 시대가 뒤늦게 시작했다는 열등감. 이런 속셈이 있으니까 역사 늘이기를 한다. 지난 강좌에서 배운 사항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우리나라가 딴나라가 주도하는 그릇된 흐름에 따라 들어가니 속이 썩긴하지만요.


  도성의 누각을 높게 세우니까 나라가 망했다. 이 문장으로 동북아 국가가 펼치는 역사 늘이기가 나쁘다며 비꼽니다. 오왕(吳王) 부차가 교만하여 수도에 고소대(姑蘇臺)를 지어 서시와 함께 즐겼습니다. 그런데 부차가 살아있을 때, 오(吳)가 망합니다. 역사에 나타난 대로 월왕(越王) 구천이 오를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고소대가 역사에 실존했는 지에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그렇지만, 누각을 높게 세우듯이 건물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지어 나라를 망했다는 얘기에 깃든 교훈을 떠올립니다. '힘을 쓸데없는 곳에 쏟아붇어 교만을 부리지 마라'.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확실하게 기록된 사항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실하다는 생각을 내비칩니다. 없던 역사를 있는 역사로 늘이는 수작을 부리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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