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자담/밝땅사] 세종 임금 - 김종서 - 이징옥. 뛰어난 인재가 있었기에 6진 개척을 탁월하게 성공했습니다. 필사



  오전에 활터에서 홀로 있다가 찬바람을 맞으며 품었던 생각을 늦게 적습니다.

  4군 6진. 조선 세종 시기에 있던 군사 활동 중에 6진에 주목합니다. 최윤덕이 주관했던 4군은 나중에 폐사군이 되었던 점이 마음에 걸리니까요. 한편 6진은 후대에도 함경도의 주요 거점으로 남을 정도로 군사 작전과 사후 정리에 좋았다며 높게 평가합니다.


  일단 세종 임금부터 치켜세웁니다. 구중궁궐에 갇힌 신세처럼 지내도 변방에 지내듯이 대 여진 군사 활동을 제대로 처리했으니까요. 이성계와 이방원이 이룬 기반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요. 그러면서 당시 함길도로 일컫었던 현지에 갔던 김종서도 높게 평가합니다. 세종께서 생전에 김종서가 없다면 이룰 수가 없다는 내용이 담긴 발언으로 높게 평가했으니까요. 무신이 아닌 문신이지만 김종서는 여느 장수가 이루기 힘든 군사 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여진도 몽골처럼 전투민족에 들어가며 고려가 윤관의 9성 개척으로 일컫는 정복 활동을 벌였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 전례를 대비하면 진짜 높게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정복한 땅을 확고하게 자국령으로 못을 박는 일도 힘겹다면 아주 힘겨우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징옥도 높게 평가하는 얘기를 적습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유능한 야전 사령관까지 있으니까 정치력과 뚝심이 뛰어난 세종 임금과 김종서가 상황에 맞는 전략을 잘 짤 수 있다며 치켜세웁니다. 염초, 유황, 목탄이 있으며 비율이 맞아야 흑색화약이 잘 나오듯이 세종 임금, 김종서, 이징옥이 있었기에 개개인의 전투력이 강한 여진족이 벌이는 항쟁을 이겨내며 두만강 남쪽을 확실하게 조선 땅으로 편입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 조선의 전성기로 일컫는 세종 임금에서 진리와 같은 구호에 맞는 사례를 찾습니다. 제 주관에 치우치며 쓰지만요. 뛰어난 인재와 이들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여건이 결합하면 적수에게 두렵기가 짝이 없다는 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호로(胡虜)와 똑같은 북한을 응징하며 무너트리면 자국 내부에 왜구(倭寇)와 똑같은 악질을 처단하며 발본해야하는 생각까지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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